에세이) 마술은 예술이다. 그렇다고 마술사가 모두 예술가는 아니다.
마술을 한다고 예술을 하는 것은 아니다
반 고흐의 자화상을 원본과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똑같이 그려낸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그에게 뛰어난 회화 기술이 있다는 사실은 의심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림을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 역시 반 고흐에 버금가는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반대로 어린아이가 삐뚤빼뚤하게 그린 낙서 한 장을 생각해 보자.
형태도 엉성하고 색칠도 서툴지만, 그 안에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무언가가 담겨 있고 그것을 보는 누군가에게 감정적인 울림을 준다면 어떨까.
나는 그 그림에서도 충분히 예술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사 자체가 예술이 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같은 작품을 재현하더라도 자신만의 해석과 표현이 담길 수 있다.
내가 구분하고 싶은 것은 기술의 수준과 표현의 가치다.
얼마나 정확하게 만들어냈는가와 무엇을 표현했는가는 서로 다른 질문이기 때문이다.
나는 마술에서도 이 두 질문이 자주 혼동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술은 예술이다. 하지만 마술을 한다는 사실이 곧 예술을 행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마술사는 불가능해 보이는 현상을 만들어낸다.
물체를 사라지게 하고, 생각을 알아맞히고,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관객 앞에서 보여준다. 그리고 관객이 놀라면 우리는 그 마술이 성공했다고 판단한다.
그 판단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마술이 의도한 현상이 제대로 전달되었고 관객이 그에 반응했다면 분명 성공적인 공연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성공이 곧 예술적 성취를 의미할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상하지 못한 일을 목격했을 때 느끼는 놀라움은 마술이 가진 중요한 힘이다.
하지만 놀라움 자체가 예술을 증명해 주지는 않는다.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장난이나 기발한 퍼즐도 예상 밖의 경험을 제공한다.
그것들이 가치 없는 행위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놀라게 했다는 사실만으로 예술적 성취까지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마술에서는 이 문제가 기술적 완성도와도 연결된다.
나는 기술적 완성도가 관객에게 안정감을 준다면, 예술적 완성도는 감정적인 울림을 남긴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숙련된 기술은 공연의 불안 요소를 줄여준다.
관객은 어색한 동작이나 진행상의 실수에 신경 쓰지 않고 눈앞의 현상에 집중할 수 있다.
마술사에게 기술이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것만으로 관객에게 무엇을 전달했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
여기서 마술은 저글링이나 서커스 같은 장르와도 흥미로운 차이를 보인다.
저글링이나 서커스에서는 인간이 얼마나 어려운 기술을 해내는지가 중요한 감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관객은 기술의 난도를 인식하고,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의 능력과 노력에 감탄한다.
그 과정 자체가 예술적 표현이 되기도 한다.
반면 마술에서는 기술이 전면에 드러나는 순간 관객의 경험이 달라질 수 있다.
눈앞에서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다고 느끼는 것과 누군가 대단한 손기술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냈다고 생각하는 것은 같지 않다.
후자의 경우 관객이 감탄하는 대상은 불가능한 현상보다 마술사의 뛰어난 능력에 가까워진다.
물론 마술에서도 기술 자체를 아름답게 표현하는 작품은 존재한다.
다만 나는 마술사가 기술적 성취를 앞세우는 순간, 마술이라는 장르가 가진 고유한 표현의 가능성을 놓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마술의 기술은 관객이 감상해야 할 대상이기 전에, 관객에게 어떤 경험을 만들어주기 위한 수단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마술을 예술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 출발점이 창작자의 의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동전 하나가 사라지는 현상을 보여주더라도 누군가는 그것을 유쾌한 장난처럼 표현할 수 있고, 누군가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허전함으로 표현할 수 있다.
관객에게 어떤 역할을 맡길 것인지, 사라지는 순간을 얼마나 오래 바라보게 할 것인지, 그 뒤에 어떤 침묵이나 반응을 남길 것인지에 따라 하나의 현상은 서로 다른 경험이 된다.
동전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달라지는 것은 그 현상을 바라보는 창작자의 시선과 그것을 경험하는 관객의 감정이다.
나는 예술적 표현이 바로 이런 선택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의도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작품이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실제 표현으로 구현되지 못한다면 관객에게 전달되기 어렵다.
창작자의 의도가 작품의 형태와 구성에 스며들고, 관객이 그것을 하나의 감각이나 감정으로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감정적인 울림이 반드시 감동이나 눈물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유쾌함도, 아름다움도, 불안함도, 설명하기 어려운 낯선 감각도 가능하다.
관객마다 받아들이는 감정이 다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현상을 목격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느끼고 받아들일 여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마술에 거창한 철학이나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마술을 예술적으로 만들겠다는 이유로 불필요한 의미를 덧붙이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동적인 음악을 사용하고, 작품에 그럴듯한 제목을 붙이고, 심오한 대사를 한다고 해서 예술적 가치가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아무런 대사 없이 물체 하나만으로 이루어지는 마술이 오히려 훨씬 풍부한 감정을 전달할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더했느냐가 아니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위해 무엇을 선택했고, 무엇을 덜어냈으며, 그 결과 어떤 경험을 만들어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하고 싶다.
나는 모든 마술이 반드시 예술적인 성취를 목표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마술만으로도 관객에게 충분한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완벽하게 숙련된 기술의 시연 역시 그 자체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오락은 오락으로서 훌륭할 수 있고, 뛰어난 기술은 그 자체로 인정받을 수 있다.
다만 그 가치들을 모두 예술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설명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어떤 마술이 예술적 성취를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그 마술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반대로 마술이 성공했다고 해서 예술적 성취까지 이루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은 마술의 가치를 낮추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마술이 가진 다양한 가치와 가능성을 더 정확하게 바라보기 위해서다.
마술사들은 오랫동안 마술이 예술이라는 사실을 인정받고자 노력해 왔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 주장을 반복하는 것보다 우리 자신의 작품을 돌아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여주는 현상은 왜 지금, 이 자리에서, 이런 형태로 존재해야 하는가.
나는 관객에게 단순한 놀라움 이상의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가.
그리고 그것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반드시 거창한 답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는 있어야 한다.
마술이라는 장르가 가진 예술적 가능성과 개별 마술사가 이룬 예술적 성취는 구분되어야 한다.
전자는 우리가 선택한 표현 방식의 가능성이지만, 후자는 각자의 작품을 통해 보여주어야 할 문제다.
마술은 예술이다. 하지만 마술을 한다는 사실이 곧 예술을 행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까지 관객을 얼마나 놀라게 했는지에 비해, 그 놀라움으로 무엇을 표현했는지는 충분히 묻지 않았던 것 같다.
마술이 예술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더 많은 마술을 보여줄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우리가 보여주는 마술이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 이야기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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