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깊고 좁은 우물, 얕고 넓은 개울
사람들 마다 갈리는 성향이 있다. 좁지만 깊게 배우는 것과 넓지만 얕게 배우는 것 이렇게 두 부류로, 깊게 배우면 우물과도 같은 전문성이 느껴지고 넓게 배우면 넓고 탁 트인 개울가 처럼 박학다식해 보인다. 나는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말하고 싶긴 않다. 우물 속이 있는 물은 항상 그 자리에 고여있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물을 길러 밥을 하거나 씻기도 하고 마시기도 한다. 하지만 우물이 오염되면 그 물을 이용하는 모두가 피해를 입는다. 그렇기에 관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주기적으로 약수터나 우물의 수질을 확인한다. 반면 개울은 넓게 흐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이용해도 비교적 신선함을 유지한다. 물고기가 살기도 하고, 더운 날에는 그 안에서 시원하게 놀 수도 있다. 하지만 깊이가 얕아 금방 바닥을 드러내는 개울은, 그곳을 찾은 사람이 쉽게 싫증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 이처럼 물은 어떤 형태를 띠느냐에 따라 분명한 장단점을 가진다. 중요한 것은 물의 형태 자체가 아니라 그 물이 어디로 흐르고 있는가이다.
올해로 나는 10년째 취미로 마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작년부터는 스페인의 거장 가비 파레라스(Gabi Pareras)와 아르만도 루세로(Armando Lucero)를 개인적으로 공부하고 있다. 그중 가비 파레라스를 통해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아르만도 루세로를 공부하면서 인지과학에도 눈을 돌리게 되었다. 또 인공지능공학부에 전공하고 있어 공부하며 학사 수준의 인공지능 지식도 쌓고 있다. 바이브 코딩으로 번역기를 만들어 해외 자료를 번역해 읽기도 하고, TED와 같은 강연을 보며 교양을 넓히기도 한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여러 가지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반면 심리학자나 개발자, 신경과학자의 눈에는 그저 이것저것 좋아할 뿐, 어느 분야에도 전문지식이 부족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이 지식들은 서로 흩어진 관심사가 아니다. 인문학과 인지과학, 인공지능에 대한 공부는 마술을 더 깊이 이해하고, 나만의 마술을 다듬는 데 도움을 준다. 제작년에 촬영한 내 마술 영상을 다시 보면 카드를 빼앗아 찢어버리고 싶을 만큼 부족한 점이 많이 보인다. 그만큼 지금의 나는 이전보다 발전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식의 넓이나 깊이만이 아니다. 내가 가진 지식의 흐름을 어떻게 연결하고, 그것을 하나의 방향으로 만들어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만류귀종(萬流歸宗)’이라는 말을 아는가. 모든 흐름은 하나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이 말은 한 분야를 잘하면 다른 분야도 저절로 잘하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각기 다른 분야가 추구하는 방향과 그 안에서 발견되는 원리가 서로 닮아 있다는 뜻에 가깝다. 즉 세상의 모든 지식과 깨달음은 결국 ‘진리’라는 하나의 길을 향해 나아간다는 거다. 진리가 무엇인지 정확히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사실이 정답인 것처럼, 진리도 마찬가지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일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곳을 향해 어떤 방향으로 걸었는지, 어떤 보폭으로 나아갔는지, 어떤 발자국을 남겼는지가 중요하다. 그러니 자신의 깊이가 부족하다고, 혹은 지식의 범위가 좁다고 불평하거나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지금부터라도 자신이 가진 지식을 서로 연결해 보자.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발견하고, 부족한 부분을 하나씩 채워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면 자신의 물도 흐름을 타고 바다를 향하고 있을 것이다. 상상해보자 한 번이라도 흐름을 타본다면, 그 한 번으로, 얼마나 더 멀리 갈 수 있을지...... 많은 이들이 자신만의 바다에 도달하길 바란다. 진심으로.
마술 10년에 저정도면 태평양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