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알아두면 좋은 인지과학 지식
가비는 마술적 경험의 구성요소로 마술, 마술사, 관객을 꼽았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마술인들은 마술과 마술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관객에 대해서는 잘 모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관객이 마술을 볼 때 왜, 어디에서 신기해하는지 모른다면, 아무리 마술을 잘하려고 해도 한계에 봉착하기 마련입니다.
관객이 마술을 보면서 신기해하려면 우선 사람이 신기함을 느끼는 부분 즉, 인지 그 자체를 이해해야 합니다. 만약 인지적 조건이 부족한 어린아이들에게 스펠바운드 같은 복잡한 마술을 하면 이해를 못 해서 신기함을 느끼기 힘들 겁니다. 반대로 스펀지 볼 같은 간단한 마술을 보여주면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신기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처럼 관객이 나의 마술을 보고 신기해하려면 왜 신기함을 느끼고 어떻게 해야 신기해 할지에 대한 의문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이해와 인지'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글에는 알아두면 마술에 쓸모 있는 인지과학 지식들을 써보려고 합니다.
1. 프라이밍(Priming)
프라이밍은 점화 효과라고도 불리는데요. 특정 생각이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유도하는 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마술하기 전 관객에게 카드를 주고 섞게 함으로써 카드에는 이상이 없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떠올리게 만듭니다. 그 후 마술의 현상이 터졌을 때 관객은 자신이 카드를 섞었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며 섞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할 때 보다 더 신기함을 느끼게 됩니다. 동전으로는 바닥에 치거나 튕겼다가 받음으로서 동전이 멀쩡하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심어두었다가 탁자를 뚫거나 휘어진다면 더더욱 불가능하다고 여기게 됩니다.
2. 앵커링(Anchoring)
앵커링은 앵커(Anchor) 즉, 닻(기준점)을 사람의 인지와 생각에 박아둠으로써 해당 기준을 중점으로 판단하게 하는 기법입니다. 흔히 이런 기법의 예시로 협상할 때 일부러 높게 말한 다음 그 기준에서 판단하게 만든다고 설명합니다. 마술에서 예를 들자면 트라이엄프를 할 때 카드를 한 면으로 정리하는 데 3~4분이 걸린다고 말한 뒤 그보다 빨리 정리해 버리면, 관객은 '3~4분'이라는 앵커를 바탕으로 판단하여 신기함을 더 직관적으로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아칸의 경우 실제 경우의 수는 1/52이지만 관객이 말할 숫자와 카드를 미리 알고서 준비해 두었다고 말한다면 관객은 1/52이라는 확률보다 미리 알고 있었다는 말에 주목하게 만들어 더욱더 불가능한 확률의 마술로 인지시킬 수 있습니다.
3.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
시야에 충분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곳에 주의가 집중되어 있을 때, 그 대상을 인지하지 못하는 현상인데요. 대표적인 실험으로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실험이지만 아마 이름은 모르는 사람이 있을 거 같아 한번 소개해 봅니다. 가비 파레라스(Gabi Pareras)의 Intuition(직관)이라는 마술이 이 이론을 아주 잘 보여주는데요. 저는 일반 덱으로 많이 해봤는데 알아채는 사람은 없었던 거 같습니다.
4. 게슈탈트 폐쇄성 법칙(Gestalt Closure)
우리 인간의 뇌는 누락된 부분이 있어도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인지한다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은 디자인이나 UI/UX에 많이 쓰이는데요. 구글의 G로고는 실제로 연결해 보면 원이 되지 않고 어긋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지는 온전한 모양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마술에서는 정말 많이 쓰이는 원리인데요. 대표적인 예시로 갈로피치(Gallo Pitch)라는 기술과 미스테리 로프 등이 있습니다.
5. 오정보 효과(The Misinformation Effect)
사후 잘못된 정보에 노출될 경우 그 정보가 원래의 기억에 영향을 주고 왜곡시켜버리는 효과입니다. 우리의 기억은 저장된 걸 그대로 불러오는 형식이 아니라 재구성하는 식으로 불러오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를 주입하면 재구성되던 기억과 섞이고 왜곡되어 버려 나중에는 왜곡된 기억을 확신하는 수준에 이르기도 합니다. 이 이론도 많이 쓰이는데요. 예를 들어 크로스 컷 포스처럼 관객이 사건의 순서를 나중에 어떻게 기억하게 되는지를 고려하는 마술과 연결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이론들은 이미 우리의 마술들 곳곳에 많이 심어져 있습니다. 다만 그 마술들이 왜 성공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이렇게 하면 되더라. 하는 식의 설명만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개인적으로 아쉬움을 느끼는 편입니다. 기술은 하루가 멀다고 발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는 AI를 통해 기술의 발전을 많이 체감하고 있는데요. 최근에는 피지컬 AI라고 해서 육체적인 부분도 로봇을 통해 인간의 영역을 더 좁혀 갈 겁니다. 이제는 우리도 발전하는 세상에 맞추어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 시작점은 앞서 말했듯 인지와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마술을 배우고 치우는 게 아니라 왜 이 원리가 먹히는지 왜 이 타이밍에 왜 이 기술을 쓰는지 고찰하고 생각을 다듬다 보면 몰라보게 우리의 마술뿐만 아니라 우리 그 자체도 변해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오 진짜 좋다요 항상 나이스한 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