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마술사는 누가 결정하는가
마술을 할 줄 알면 마술사일까?
마술을 직업으로 삼으면 마술사일까? 아니면 오랫동안 마술을 공부하고 연구한 사람에게만 그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누군가를 마술사라고 부른다. 무대에서 마술을 보여주면 마술사이고, 마술을 잘 알면 마술사이며, 직업란에 마술사라고 적혀 있으면 별다른 의문 없이 받아들인다.
그런데 나는 이런 기준들이 마술사라는 사람을 충분히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공연을 한다는 사실이 공연자로서의 성장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오랫동안 공부했다는 사실이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졌다는 뜻도 아니다. 마술로 돈을 번다는 사실 역시 그 사람이 마술을 어떤 태도로 대하고 있는지까지 알려주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마술사를 판단해야 할까?
나는 마술사를 크게 세 가지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다.
첫 번째는 '관객이 보는 마술사'다.
관객 앞에서 마술을 공연하고, 더 나은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키는 사람이다.
이들에게 마술은 관객을 통해 완성된다. 관객이 무엇을 보고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어떤 순간에 집중하고 어떤 순간에 흥미를 잃는지 고민한다. 자신의 기술과 표현을 다듬고, 공연에서 발견한 문제를 다음 공연에서 개선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드시 새로운 작품을 발명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만든 작품도 공연자의 해석과 표현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이 될 수 있다. 같은 작품을 공연하더라도 누가, 어떤 관객에게,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달라진다.
나는 이렇게 관객을 향해 자신의 마술을 발전시키는 사람을 마술사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마술사들이 보는 마술사'다.
이들은 반드시 관객 앞에 설 필요가 없다.
마술이라는 분야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기존의 방법과 개념을 탐구하며,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가는 사람들이다.
그 결과는 새로운 작품일 수도 있고, 기술이나 이론, 새로운 표현 방식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기존의 방법이 가진 문제를 발견하고, 누군가는 전혀 다른 접근으로 그것을 해결한다.
이들이 만들어낸 결과는 다른 마술사의 손을 거쳐 관객에게 전달되기도 한다. 관객이 그들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이 마술에 남긴 가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여기서 나는 한 가지를 구분하고 싶다.
마술을 많이 아는 사람과 마술을 연구하는 사람은 다르다.
수많은 렉처를 수집하고 오래된 자료를 공부하는 일은 분명 가치 있다. 그러나 지식을 축적하는 행위와 그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행위는 같지 않다.
물론 모든 연구가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시도는 실패하고, 오랫동안 고민한 문제가 끝내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과정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알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지, 아니면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질문과 가능성을 찾아가고 있는지에 있다.
나는 이러한 탐구와 창작을 자신의 중요한 활동으로 삼는 사람 역시 마술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세 번째는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마술사'다.
앞서 이야기한 두 가지 역할을 모두 수행하며, 그 경험을 서로 연결하는 사람이다.
이들에게 공연과 연구는 따로 존재하는 활동이 아니다.
관객 앞에서 발견한 문제는 새로운 연구의 출발점이 되고, 연구를 통해 얻은 발견은 다시 공연에서 검증된다. 무대에서의 경험이 창작의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창작의 결과가 기존에는 불가능했던 관객 경험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나는 이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연만을 통해 얻기 어려운 발견이 연구에서 나오고, 책상 앞의 연구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사실이 관객 앞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두 영역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이 세 번째 모습을 가장 이상적인 마술사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단순히 두 가지 일을 모두 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서로 다른 두 경험이 하나의 사람 안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앞선 두 유형의 마술사를 불완전하거나 부족한 사람으로 만든다는 뜻은 아니다.
평생 공연이라는 한 분야를 깊이 탐구한 사람이 두 분야를 어중간하게 다루는 사람보다 못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연구와 창작에만 몰두한 사람의 가치 역시 공연 경험의 유무로 판단할 수 없다.
두 분야를 모두 다룬다는 사실만으로 더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마술사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두 영역의 만남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사람은 어떨까?
나는 그들을 반드시 마술사라고 불러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마술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은 마술 애호가일 수 있다. 많은 지식을 수집하고 공부하는 사람은 마술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일 수 있다. 그리고 마술을 단순히 수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공연자도 있을 수 있다.
이들이 마술사보다 못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각자의 활동은 그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다. 다만 서로 다른 활동에 반드시 같은 이름을 붙여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특히 돈을 버는 문제는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마술을 직업으로 삼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공연을 책임지고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면서 정당한 대가를 받는 사람은 내가 생각하는 첫 번째 마술사에 충분히 해당한다.
내가 구분하고 싶은 것은 수익의 유무가 아니라 마술을 대하는 태도와 실제 활동이다.
같은 작품을 오랫동안 공연하더라도 관객의 경험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발전시키는 사람이 있다. 반면 이미 익힌 몇 가지 마술을 반복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두 사람이 같은 일을 하고 같은 돈을 번다고 해서 마술을 대하는 방식까지 같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다른 사람의 마음속 진정성까지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누군가가 얼마나 진지하게 연구하고 있는지, 어떤 고민을 거쳐 자신의 공연을 발전시키고 있는지는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한 번의 공연이나 몇 마디 대화만으로 그 사람을 단정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마술사라는 이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경력이나 수상 실적, 지식의 양처럼 눈에 보이는 것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마술사는 누가 결정하는가?
관객이 결정할까? 관객은 무대 위에서 마주한 사람을 마술사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무대 밖에서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까지 알지는 못한다.
마술사들이 결정할까? 동료들은 누군가의 연구와 창작을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관객에게 어떤 경험을 전달하고 있는지 모두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스스로 마술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결정하는 것일까?
자신을 어떻게 소개할지는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그 이름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그 이름에 담긴 가치까지 증명해 주지는 않는다.
결국 누구에게도 다른 사람의 정체성을 최종적으로 판정할 절대적인 권한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모든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마술사라고 부를 때 그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준에 서로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이야기한 세 가지 모습 역시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할 정답이 아니다. 마술을 오랫동안 바라보며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기준일 뿐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 마술사는 단순히 마술을 할 줄 아는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
관객에게 전달하는 경험을 발전시키거나, 마술이라는 분야에 새로운 가능성을 더하거나, 그 두 가지를 함께 추구하는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유명한지,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지, 얼마나 오래 활동했는지가 아니다.
자신이 마술이라는 분야에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그 일을 통해 무엇을 변화시키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누군가가 나를 마술사라고 인정해 주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인정이 내가 하는 일을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반대로 누군가가 나를 마술사라고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쌓아온 경험과 발견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누가 마술사라는 이름을 허락해 주는지보다, 그 이름으로 무엇을 해왔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술사라는 이름은 스스로 붙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름에 어떤 의미를 남길지는 결국 자신이 하는 일에 달려 있다.
어쩌면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누가 마술사로 불릴 자격이 있는지를 가리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스스로 마술사라고 부르는 우리가, 그 이름에 걸맞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돌아보는 일이 먼저 아닐까.
마술사 쉽지않네